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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jinsu
SPECIAL THEME
INTERVIEW
  • 경계가 무너진
    현시대의 반영 나나랜드

    • 글. 차지은
    • 사진. 안호성
  • 밀레니얼세대에게 나나랜드나 그린슈머는 사실 큰 이슈가 아닐지도 모른다. 이미 사회적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모호해진 지금, 나에게 집중하고 나의 취향과 개성에 집중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자신만의 색으로 미술계의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는 사비나미술관의 이명옥 관장과 ‘나나랜드’ 그리고 ‘그린슈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 관장
‘개성’으로 미술계의 성벽을 허물다

계절이 바뀌는 봄의 문턱, 사비나미술관에서 만난 이명옥 관장은 이미 초록으로 물든 봄의 한 가운데에 있었다. 첫인상부터 강렬했다. 반짝이는 눈동자는 날카로웠고, 미소는 온화했으며, 가늠할 수 없는 그의 머릿속에는 많은 생각이 이리저리 마인드맵을 펼치고 있는 것처럼 바빠 보였다. 가히 시대를 앞서가는 미술관의 관장다운 모습이었다.
“말하자면 저도 나나랜더이자 그린슈머라고 할 수 있어요. 개성이 뚜렷하고, 친환경 화장품만을 사용하니까요. 남의 시선을 잘 신경쓰지도 않죠. 태생이 그래서 어쩔 수 없어요. (웃음) 제가 태어난 시대에는 맞지 않은 개념이었지만요. 최근 나나랜드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진다 해서 제가 기쁘거나 한 것은 아니고요. 그저 제가 할 일을 하며, 제 길을 가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나나랜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명옥 관장이 이끄는 사비나미술관은 이 관장과 닮았다. 세련된 겉모습이나 층별로 다른 전시들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다이내믹함, 독창적인 소통방식이 그렇다. 그간 사비나미술관은 고고한 미술전시계의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며 주목받아 왔다. 자신만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나나랜드’가 미술계에 존재한다면, ‘사비나미술관’이 꼭 그런 모습이 아닐까.
“사비나미술관의 슬로건이 ‘새롭게 하라. 놀라게 하라.’입니다. 순수미술을 대중의 언어로 풀어내기 위해 항상 트렌드를 읽으려고 노력합니다. 새로운 시도와 관객의 눈높이에 맞춘 전시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관건이죠. 순수미술계의 성벽을 허물고 ‘융복합전시’를 최초로 선보이게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어요.”
1996년도 개관한 사비나미술관은 독자적인 방학 특수전시, 기획전시 등을 통해 미술계 이슈로 떠올랐으며, 경계를 허문 ‘융복합전시’를 최초로 시도한 미술관으로서 독자적인 행보를 이어가는 중이다. 사비나미술관의 원동력은 이명옥 관장의 도전정신과 모험정신이다. 이 관장은 사비나미술관의 관장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가고 있다.
“안주하는 것은 재미가 없어요. 예술계에 있는 분들이라면 다 그렇겠지만 저는 항상 새로운 자극을 추구하죠. 제 자리에서 제가 할일을, 틀에 가두지 않고 저답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비나미술관 신년특별기획전 <뜻밖의 발견, 세렌디피티> 전시모습. 예술가들이 영감을 얻은 순간부터 창작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독특한 전시로 창조의 본질은 '발견하는 눈'이라는 사비나미술관의 의도를 담았다.
전시 관람과 나나랜드, ‘나’를 찾는 과정

나나랜드와 순수미술은 시대정신을 반영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명옥 관장은 항상 관객의 반응을 살피고 요즘 세대가 주목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포착한다. 꾸준한 관찰과 끊임없는 고민으로 만들어진 순발력과 기획력이 지금의 사비나미술관을 만들었다. 지난해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와 콜라보로 선보인 <나나랜드 : 나답게 살다> 전시도 이 같은 배경에서 탄생했다.
“나나랜드는 신조어지만, 이미 밀레니얼세대에게는 익숙한 개념이죠. 혼자 살고, 혼자 밥을 먹는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현 사회에서 나에게 오롯이 집중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사비나미술관의 전시는 이런 대중의 흐름을 읽고 순수미술과 접목해 소통하는 방법을 고민한 결과물입니다.”
나나랜드의 후속 전시였던 <우리 모두는 서로의 운명이다 – 멸종위기동물, 예술로 HUG 展>도 나나랜드의 한 부분으로 볼 수 있는 그린슈머와 맞닿은 전시다.
사비나미술관은 트렌디한 전시로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스스로를 나나랜더, 그린슈머로 소개하는 이 관장의 방식이 통한 것이다. 이 관장은 “예술작품을 만나는 것은 ‘나’에게 집중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어요. 처음 전시를 찾는 분들께는 자신의 취향을 먼저 알아보시길 추천합니다. 그 다음에는 ‘왜 내가 이 작품에 끌리는지’ 생각해 볼 수 있죠. 그렇게 예술작품을 만나면서 또 다른 내 안의 나를 찾아가도록 돕는 것이 미술관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강조한다.

  • 나나랜드 展에 전시된 작품 <미인도, 이순종, 2019>와 <Face of Face #5, 천경우, 2016>
자신만의 색으로 흐름을 읽다

최근 코로나 19의 여파로 미술관도 큰 타격을 입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공공장소를 찾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감소한 것. 하지만 사비나미술관은 이를 대비하기라도 한 듯, VR 기술을 활용한 온라인 버추얼 미술관을 운영 중이다. VR 산업이 확산되기 전인 2012년부터 운영돼 온 사비나미술관의 서비스다.
“요즘은 순수예술이 그 영역을 벗어나 새로운 산업과 협업하는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사회의 흐름을 읽고 자신만의 색으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사비나미술관은 독창적인 시선으로 흐름을 이끌어가고 있는 것. 그 중심에 있는 이명옥 관장은 사비나미술관만의 길을 개척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항상 새로운 생각들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주어진 인력과 재력 안에서 시대를 잘 반영한 틈새 전략이 저희 사비나미술관의 차별화 방법입니다. 사비나미술관만의 길을 만드는 것이 저의 목표죠.”
사비나미술관은 올여름 또 다른 전시를 기획 중이다. ‘나’에게 집중한 <나나랜드 展>과 친환경 주제의 <우리 모두는 서로의 운명이다 展>에 이어, 이번엔 ‘관계에서의 나’를 조명한다. 관계로서 정의되는 또 다른 나, 자아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로 다시 한 번 관객을 초대할 예정이다. 전시미술계의 나나랜드, 사비나미술관이 보여줄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