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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SS 금융가이드
전문가 리포트
  • 그린스완 시대,
    한국 지속가능 금융의 방향

    • 글.김대호 한국그린파이낸스연구소 대표
  • 글로벌 경제의 대표적 오피니언 그룹인 세계경제포럼(WEF)은 ‘세계가 직면한 가장 큰 위협’으로 기후변화를 주장했다. 그만큼 기후변화는 앞으로 우리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사안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 기후가 삶과 경제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으며, 우리는 기후 위기에 어떻게 대응해 나가야 할까?
코로나19 위기 다음은 기후위기?

2020년 1월, 글로벌 경제의 대표적 오피니언 그룹인 세계경제포럼(WEF)은 「2020 글로벌 리스크 보고서」를 발간했다. WEF는 보고서에서 놀랍게도 코로나19 사태를 예견이라도 한 듯 ‘감염병 (Infectious diseases)’ 리스크를 언급하면서 어떤 나라도 에피데믹 또는 팬데믹에 대처할 준비가 안 되어 있음을 지적했다. 그런데 보고서는 ‘감염병’보다 훨씬 더 충격이 큰 리스크 요인으로 ‘기후위험 대응 실패(Climate action failure)’를 꼽았다. 기후변화 관련 위험을 발생 가능성(Likelihood)이 매우 높은 것은 물론이며 인류에게 미칠 충격이 가장 큰 위험으로 평가한 것이다.
그로부터 1년이 흘렀다. 다행히도 이들이 우려했던 파국적인 수준의 기후위기는 발생하지 않았다. 대신 코로나19 감염병이라고 하는 초대형 시스템 리스크가 발발했다. WEF의 경고가 현실화 된 것이다.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지구상의 모든 국가와 경제주체는 대규모 글로벌 시스템 리스크의 실체를 제대로 경험했다. 모두가 고통을 겪었지만 희망은 있었다. 역사상 유례가 없는 짧은 기간 내에 백신이 개발되었고 치료제도 속속 나오고 있어 조금만 더 견디면 인류는 감염병의 긴 터널을 벗어날 것이다.
WEF는 2021년 초 「2021 글로벌 리스크 보고서」를 다시 발간했다. 2021 보고서는 기후위기가 백신 주사로 면역을 획득할 수 없는, 인류의 가장 거대한 리스크임을 상기시킨다. 2020년 상반기는 전 세계적인 봉쇄조치로 인해 탄소배출이 감소했지만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탄소배출량 흐름을 뒤돌아 볼 때 탄소배출은 다시 증가세로 돌아설 것이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기후위기 대응 실패’가 여전히 가장 강력하면서도 두 번째로 발생 가능성이 큰 위험이며,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은 코로나19 방역 대응을 이유로 지연되어서는 안 될 과제임을 지적했다.

  • <그림 1. 코로나19 이후 탄소배출 시나리오>
    65 60 55 50 45 40 35 30 35 20 금융위기 : 1% 감소 코로나 : 8% 감소 예상 코로나 이전 수준 복귀 2℃ 목표달성 경로 1.5℃ 목표달성 경로 자료 : WEF, 2021 글로벌 리스크 보고서
  • <그림 2. 글로벌 그린본드 발행 시장>
    2013 2014 2015 2016 2017 2018 2019 2020 11 37 44 86 158 171 258 296 단위 : 십억 달러 자료 : Climate Bond Initiative, Environment Finance
글로벌 지속가능 금융시장의 발전

글로벌 금융시장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국제사회와 각국 정부가 탈탄소와 지속가능발전 이념 구현을 위해 경제구조와 인프라 체계를 과감하게 전환시키려는 정책적 방안을 실행에 옮기는 사이, 글로벌 금융기관들은 벌써 지속가능 금융시장에서 새로운 투자 기회와 수익창출 기회를 발견하고 움직이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새로운 산업이 부상하고, 기업들도 새로운 자금조달 방식을 필요로 하게 됨에 따라 이를 파이낸싱하는 금융기관에게도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가 탄생한 것이다. 리스크 관리 관점에서도 지속가능 금융방법론이 중요해졌다. 전통적 리스크 관리 모델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기후위기라고 하는 거대한 시스템 리스크에 대한 인식을 전제로 좌초자산 또는 잠재 좌초자산에 대한 대응 방향을 설정해야 하는 것이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CEO 래리핑크는 2020년 투자자 연례 서한에 이어 2021년 투자자 서한에서도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을 역설했다. 그는 지난 1년간 코로나19 위기로 인해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이 분산된 것이 아니고 오히려 강화되었다면서, “팬데믹으로 인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시스템 리스크에 취약한지, 그리고 다가올 기후변화가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꿔 놓을지 진지하게 고민하도록 만들었다.”고 털어 놓는다. 그는 2020년 1월부터 11월까지 전 세계 투자자들이 지속가능성 자산에 투자한 금액이 2,880억 달러로 2019년 전체 규모에 비해 96% 증가했는데, 이는 장기적이면서도 빠르게 진행될 금융시장 대전환의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기후변화 리스크가 곧 투자 리스크이지만 한편으로는 기후변화 대응이 역사적으로 손꼽힐 투자 기회를 제공할 것이기 때문이다.
래리 핑크가 지적한 것처럼 지속가능 투자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지속가능투자 연합회(GSIA)’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전 세계 투자자산 잔고 AUM는 92조 달러인데 이 중 지속가능 투자전략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 투자자산은 30.7조 달러로 총 투자자산의 33%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2016년 대비 2년 성장률은 전체 AUM이 13.4% 증가하는 동안 지속가능 투자는 34.4%의 성장세를 보였으니, 그야말로 폭발적 성장을 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속가능 투자시장의 대표적 금융상품인 그린본드 시장을 봐도 그 추세가 명확하다. 그린본드는 조달자금의 용도가 그린 프로젝트로만 한정되며, 조달자금 사용 관리와 리포팅까지 의무화 되어 있기 때문에 기후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 금융상품으로 확실하게 자리 잡았다. 연기금이나 개인투자자 등 최종 투자자들은 이왕이면 기후변화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자산에 투자할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자금 조달 기관 입장에서도 ‘책임 있는’ 기관으로 인식될 수 있고 수요처 발굴이 더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어 그린본드 시장이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전 세계 그린본드 발행 규모는 2013년에 110억 달러에서 2020년은 2,958억 달러로 급증했다.

국내 지속가능 금융시장 발전 현황 및 과제

국내 시장의 ESG 시계도 빨라지고 있다. 외부적으로는 미국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등장하고 탄소국경세, RE100과 같은 글로벌 환경 규제가 점점 가시화 된 데다, 국내에서도 팬데믹 발발 이후 환경 문제가 결코 시나리오로만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형성된 데 따른 것이다. 주요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까지도 2021년 최대의 화두이자 전략은 ‘ESG 경영 강화’이다. 이에 따라 이사회 내 지속가능 경영위원회를 신설하는 등 지배구조를 강화하고, 정부의 정책 방향에 맞추어 2050 탄소중립을 목표로 제시하는 기업이 크게 증가했다. 이러한 흐름을 금융섹터에서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지속가능 금융이다.
국내 지속가능 채권 시장은 외화채권 한국물(Korean Paper) 시장에서 최초로 형성된 후 원화 채권시장으로도 그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원화 ESG 채권 발행액은 2019년 25조 7천억 원이 발행된 데 이어 2020년은 그 두 배가 넘는 58조 9천억 원의 채권이 발행· 상장되었다. 또한 주요 은행 금융지주들도 앞다투어 ESG 금융 전략을 발표하고 ‘탈석탄 금융’을 선언하고 있다. ‘적도원칙’에 가입하고 탄소중립을 선언한 금융지주도 속속 등장했다. 증권사들도 ESG 리서치 전담 부서를 신설하거나 지속가능 채권 발행 주관사 기능을 강화하는 등 ESG 금융을 새로운 사업 기회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이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주요 연기금들도 지속가능성을 새 운용원칙으로 포함하고 책임투자자산을 대폭 확대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43조 원의 국내채권 위탁자산에 모두 ESG 전략을 적용한 후 해외채권과 주식 자산에도 ESG 전략 적용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이렇게 국내 지속가능 금융시장이 크게 성장해 나가는 모습은 글로벌 금융산업의 흐름에 비추어 볼 때도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몇 가지 우려도 있다. 먼저 가장 많이 제기되는 문제는 ‘ESG 워싱’ 또는 ‘그린 워싱’이다. 예를 들어 본다. 국내 ESG 채권 발행이 급증해서 양적으로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시현했지만, 세부 내역을 들여다 보면 다소 실망스러운 부분이 있다. 2020년 발행된 59조 원의 ESG 채권은 소셜본드가 54조 원으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환경·기후 프로젝트를 위한 그린본드는 1조 원 남짓에 불과하다. 소셜본드 54조 원도 한국주택금융공사 발행액이 48조 원에 달하는 등 아직 국내에 지속가능 채권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다고 말하기 어려운 모양새다. 한편 자본시장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ESG 펀드 포트폴리오의 ESG 수준이 일반 주식형 펀드의 ESG 수준과 유의한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ESG 또는 기후 위기와 관련된 기업의 기회와 위험에 관한 정확한 정보 공개, 그리고 이에 기반한 ESG 평가가 절실한 이유다.
우리 금융 당국도 최근 발표한 「기업공시제도 종합 개선방안」(2021. 1월)에서 ESG 공시를 단계적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글로벌 시장의 적극적인 기후 공시 제도와 비교하면 차이가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2017년에 G20가 주도하여 만든 TCFD 기준이 세계적 표준이 되어 가고 있다. 영국 금융감독청(FCA)은 2025년까지 TCFD 공시를 완전 의무화 한다는 일정 계획을 확정했고, 일본 정부는 TCFD 기준을 감안한 기후 공시제도를 올해 중 발표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았다. EU는 금융기관의 회사 및 상품 레벨에서 기후 등 지속가능성 공시를 강화한 ‘SFDR(Sustainable Finance Disclosure Regulation)’을 시행할 예정이다. 미국 SEC도 2010년에 제정된 기후공시규정을 10년 만에 개정 추진하고 있다. 비효율적인 공시제도 운영으로 기업에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국내 산업계의 부담만을 고려해 느슨한 비재무 공시제도를 운영하는 것은 장기적인 국내 산업의 경쟁력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한편 2021년 ESG 금융 확대를 주요 추진 전략으로 설정한 국내 금융기관들은 ESG와 관련된 각종 원칙에 가입하거나 선언을 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다. 이러한 원칙이나 선언들은 지속가능 금융 추진 동력을 확보하고 내부 프레임워크를 갖추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나 이제는 행동이 필요한 시점이다. 글로벌 은행들은 이제 경영진 레벨에서 지속가능 금융을 논의하는 단계가 지나고 이를 실제 업무 프로세스에 구현해 내고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 나티시스은행은 모든 금융거래에 대해 ‘Green Weighting Factor’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금융거래가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의 방향과 크기에 따라 금융거래를 ‘다크 브라운’부터 ‘다크 그린’까지 7단계로 구분하고 그 결과에 따라 위험가중자산(RWA)을 조정하고 있다. 나티시스는 금융 섹터 대출을 제외한 전체 포트폴리오의 82%의 여신에 대해 이러한 방식의 레이팅을 적용하며 이는 IT 시스템을 통해 은행의 여신 프로세스에 통합적으로 구현되고 있다.
국내외 금융시장에서 지속가능 금융이 생각보다 매우 빠른 속도로 주류 금융으로 변모하고 있다. 금융산업 관점에서도 새로운 금융환경 하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려면 국내 지속가능 금융을 확대하고 체계화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 기업들이 마주할 ESG 관련 ‘新무역장벽’이다. 선진적이고 실질적인 지속가능 금융 제도를 통해 기업의 ESG 대응 능력을 극대화하는 것. 결국 이것이 그린스완 시대 최고의 백신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