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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naland green sumer
SPECIAL THEME
REVIEW
  • 나나랜드와
    그린슈머의 교차점
    ‘페이크 소비’

    • 글. 박재항 대학내일20대연구소 고문
  • 대학에 입학하는 자녀에게 부모가 자신들의 대학 생활을 돌아보면서 오리엔테이션을 해준다. 남녀 간 미팅, 특히 그중에서도 학과 대 학과로 이루어지던 ‘과팅’의 설렘, 주량도 모르면서 마구 들이켰다가 쓴맛을 본 MT의 추억, 중고교 특별활동과 달리 스스로 선택하고 선배나 동기들과 어울렸던 동아리나 학과 내 학회 모임 등. 그런데 대학 새내기 자녀는 학과나 동아리 모임을 거부하며 철저한 아웃사이더, 곧 ‘아싸’로 살겠다고 선언한다. 대학을 가는 근본적인 이유를 거부하는 것 같은데, 놀랍게도 그 자녀처럼 아싸를 자처하며 선언한 동기들이 많았다. 학과 모임에 참여하고 동아리 활동을 하는 인사이더, 곧 ‘인싸’들이 실제로는 아싸가 되는 모순어법적인 상황이 펼쳐졌다.
신입상 : OT랑 MT는 꼭 가야 하나요? 선배 : 학과활동에 참석하지 않았는데, 대학생활에 아무 지장 없던데요. / 53.6% 긍정응답, 34.7% 중도응답, 11.7% 부정응답 <삶의 방식에 대한 생각> ‘사회·타인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삶의 방식보다 나 자신에게 맞는 방식을 선택한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었다.
자발적인 아싸 선언

매년 학기 초에 대학교 새내기 대상으로 대학 생활에서 궁금한 것들을 묻고, 선배들이 답하는 코너를 대학생과 밀레니얼세대 마케팅 활동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대학내일’에서 진행해왔다. 최근 몇 년간 가장 많이 나오는 질문이 있다. “OT랑 MT는 꼭 가야 하나요? 안 가면 안되나요?” 선배들의 답도 지난 10년 전과 비교해 달라졌다. “학과 활동에 참석하지 않았는데, 대학 생활에 아무 지장 없던데요.”라는 쿨한 건지, 인간다운 정이 없는 건지 정의하기 힘든 대답이 주류가 되었다.
어릴 때부터 시험 성적에 따라 줄을 세우는 체제 속에 지금의 20대는 커왔다. 대학교 입학을 목표로 하여 그런 획일화된 전체주의적 시스템을 견뎌 왔는데, 취업에서도 역시나 그런 서열이 어떤 의미에서는 더욱 공고하게 높게 존재하고 있다. 게다가 그런 벽을 넘어선다고 해도 미래 자체가 갈수록 불투명해지고 있다. 그래서 지금의 젊은 세대가 받는 스트레스가 과거의 같은 연령대보다 훨씬 강하다고 한다. 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는 어쩔 수 없지만,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스트레스는 원천적으로 차단하자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나를 중심으로 한 가치관을 세우고, 나에게 맞는 사람들과 사귀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소비하는 ‘나나랜드’를 건설하는 것이다.
‘삶의 방식에 대한 생각’을 주제로 한 설문에 ‘사회·타인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삶의 방식보다 나 자신에게 맞는 방식을 선택한다.’라는 문항에 긍정하는 비율이 계속 50%를 훌쩍 넘는데 비하여, 부정하는 이들은 10%에 그친다.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도 가족이나 주변인의 의견에 따르기보다는 자신의 만족을 우선으로 고려한다는 비율도 비슷하게 나온다.
소모적이고 부담스러운 관계에 들이는 시간과 비용을 과감히 제거한다. 변치 않는 우정이나 사랑을 쉽게 약속하지 않는다. 변치 않는 관계가 아닌, 변하기에 재미있고, 그래서 특별하면서도 부담 없는 관계를 지향한다. 적당한 거리감을 두는 대신 각자 다른 불호의 영역을 존중하고, 관계 자체가 목적이기보다는 개인의 관심사와 취향을 존중하고 확장하는 일종의 수단으로 관계를 인식한다. 기본적으로 관계는 ‘못’ 맺는 게 아니라 ‘안’ 맺는 것으로, 관계 형성은 언제나 가능하다고 믿으며, 그런 나를 중심으로 한 취향 위주의 관계가 고단한 현실과 불투명한 미래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원동력이 되고, 자신만의 소비 태도와 연결된다.

나나랜드의 소비 성향

‘나나랜드’의 사람들은 ‘핀셋 소비’의 성향을 보인다고 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확실히 알고, 어떤 경로로 구할 수 있는지도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서, 핀셋으로 딱 집듯 품목을 구입하고 소비한다는 것이다. 진로 결정과 비슷하게, 아니 당연히 그보다 쉽게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기존 평가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금기시되었던 음식에 ‘더티(dirty)’, 패션에 ‘어글리(ugly)’라는 수식어를 붙인 상품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뉴트로 열풍의 바탕에도 자신만의 취향을 강조한 이런 흐름이 있었다.
딱 하나의 결함이나 싫어하는 것에 즉각적으로 그리고 완전히 돌아서는 것도 나나랜드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럽다. 그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취저’ 열 가지보다 자신이 극도로 혐오하는 ‘극혐’ 단 하나에 예민하고 단호하게 반응한다.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여 과소비를 한다.’라고 평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 그들은 좋아하지 않는 ‘불호(不好)’를 존중하고 주의를 기울여 달라는 외침을 더욱 크게 내고 있다. 그 외침이 향하는 목적지는 ‘자유’인데, 소극적·적극적인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소극적·적극적 자유와
환경을 생각하는 페이크 소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추구하고 행할 수 있거나 싫어하는 것을 강요당하지 않는 게 소극적 자유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달라.’라든지 ‘내가 싫어하는 것을 없애라.’라고 하는 것은 적극적 자유이다. 다시 말하면 ‘○○으로부터의 자유’가 소극적, ‘○○을 향한 자유’가 적극적인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나나랜드의 사람들은 확실하게 후자 쪽이다. 소비 분야에서 소극적에서 적극적으로 나아간 대표적인 사례들이 환경 부문에서 두드러졌다.
책임 있는 소비 활동을 통해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와 라이프스타일을 표현하는 게 나나랜드의 방식이다. 처음에 이들은 동물에게 고통을 주는 실험을 하거나 그들로부터 채취된 재료로 만든 상품을 팔고, 환경을 파괴하는 과정을 거치는 기업들이 내놓은 제품 구입을 반대하거나 비판하는 활동을 펼쳤다. 그런데 점차 적극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며 이제는 아예 진짜 동물이 아닌 인조, 친환경적이며 윤리적이고 사회적 약자와도 함께 할 수 있는 가격의 ‘가짜’, ‘페이크(fake)’ 소비라는 개념을 들고 나왔다.
패션계에서 보면 실제 동물의 털이나 가죽 대신 인조 소재로 만든 제품들이 페이크 소비의 대표적인 예이다. 거위나 오리의 깃털이 아닌 인공 충전재, 버려진 솜이불 등을 재활용한 친환경 패딩이 주목을 받았다. 그 패딩의 구매자 80% 이상이 10~30대의 젊은 소비자였다고 한다. 이들이 바로 나나랜드의 주요 구성원들이다. 워낙 이런 페이크 소비의 성과가 높다 보니, 진짜 동물 모피를 재료로 사용한 코트를 인조 모피라고 하면서 파는, 곧 진짜가 가짜를 사칭하는 역설적인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햄버거 업체의 대표가 지난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의 전자박람회인 CES(Consumer Electronics Show)에서 주요 연사로 나섰고, 음식물 특성상 실내는 아니고 야외에 햄버거를 전시하고 시식할 수 있는 공간까지 마련했으며 예상대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콩을 재료로 한 식물성 패티를 고도의 전자 기술과 접목하여 고기와 거의 같은 맛으로 피까지 뚝뚝 떨어지게 했다. 한국에서도 다른 업체의 식물성 햄버거 패티가 작년에 수입되어 단기간에 15,000팩 이상이 판매되며 인기를 끌었다. 이런 트렌드를 반영하여 한국의 대학들에서 OT나 시험 기간에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간식에 비건 메뉴를 따로 마련한 대학들이 3~4년 전부터 나타나 점차 많아지고 있다. 적극적 자유를 외치는 나나랜드들이 이룬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페이크 소비의 유형

페이크슈머(fake_consumer)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실속추구형’이 그 첫째이다. 둘째는 ‘안전추구형’이다. 페이크로 사전 실험을 하는 식이다. 이 둘은 소극적인 자유 추구에 경도되어 있다고 치면, 세 번째인 ‘저항추구형’은 적극적인 자유를 부르짖는다. 이들은 기존 브랜드의 권위, 재료나 생산과정에서의 불합리한 관습에 도전한다. 그렇게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는 사회적 책임의식을 지녀 대안을 찾고 대체재를 앞장서서 소비한다. 소비가 자신의 경제 형편이나 미적인 취향 등을 보여주는 것만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과 사회적 의식까지 보여준다고 자부한다.
화장품 브랜드 하나는 공병을 재활용해 포장재로 사용하고 다른 재활용 재료들이 들어간 ‘그린 프로덕트’를 판매하는 공간을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에 만들었다. 거기서 방문객들은 공병 파쇄과정을 체험하며 대용량으로 만든 재활용 제품들을 배경으로 인증 사진을 찍는다. 나나랜드의 성향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분야가 바로 친환경 그린 소비이다. 둘이 엇갈리는 교집합 영역에 페이크 소비가 있다. 거기에 SNS가 인증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가속도를 더한다. 그렇게 나나랜드와 그린슈머의 교차점은 더욱 붐벼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