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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벚꽃이 아름다운
    하동
    VS
    정원이 아름다운
    지베르니

    • 글·사진. 송일봉 여행작가
  • 경상남도 하동과 프랑스의 지베르니는 봄과 잘 어울리는 곳이다. 아름다운 꽃과 함께 봄을 맞이한다는 점도 서로 닮았다. 하동의 섬진강변에 벚꽃이 만개할 무렵이면 지베르니는 겨우내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아기자기한 봄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하동에는 소설가 박경리와 관련된 명소가 있는 반면, 지베르니는 인상파 화가로 유명한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와 깊은 관련이 있다. 그러나 하동과 지베르니는 뚜렷하게 다른 점이 있다. 하동은 섬진강과 지리산이 만들어낸 자연풍광이 아름다운 데 반해, 지베르니는 클로드 모네가 만든 인공정원이기 때문이다. 자연적인 멋과 인위적인 아름다움이 주는 느낌은 과연 어떨까?
벚꽃이 아름다운
하동
화개마을과 평사리 사이의 아름다운 벚꽃길

봄날의 여행은 참으로 행복하다. 춥고 긴 겨울의 터널을 지나면 우리 몸은 기지개를 켠다. 마냥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것이다. 어디로 갈까? 봄을 일찍 만날 수 있는 곳이면 좋을 텐데…그래서 서둘러 짐을 꾸려 길을 나서고 싶은 곳. 그곳이 바로 섬진강변에 있는 하동이다. 하동은 봄날의 자연풍광이 아름다운 곳이다. 지리산 자락 화개천에 벚꽃이 피면 그 아름다움은 정점에 이른다. 둘러볼만한 명소들도 많다. 가수 조영남 씨의 노래로 유명한 화개마을(화개장터)이 있고, 화개마을에서 시작되는 ‘10리 벚꽃길’은 낭만 그 자체다. 벚꽃길이 끝나는 길에서는 천년 고찰 쌍계사가 지척이다. 그리고 소설 ‘토지’의 배경지인 평사리도 둘러볼 수 있고, 지리산 자락 청학동에서는 잠시나마 맑은 기운을 느껴볼 수 있다.

화개마을

하동 여행의 중심지는 화개마을이다. ‘눈 속에서 칡꽃이 피었다’해서 화개(花開)라 했던가. 산수가 아름다운 이곳을 가리켜 옛 선인들은 ‘화개동천(花開洞天)’이라 불렀다. 신라 말의 석학 고운 최치원은 ‘호중별천(壺中別天)’이라는 한시를 통해 ‘동국화개동 호중별유천(東國花開洞 壺中別有天)’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는 곧 화개마을은 호리병(또는 항아리) 속에 들어 있는 별천지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마치 ‘무릉도원’과도 같은 화개마을은 김동리의 단편소설 ‘역마’의 주 무대로도 잘 알려져 있다.
화개마을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명물은 ‘10리 벚꽃길’이다. 화개마을에서 쌍계사 초입까지 이어지는 약 5km의 도로변은 봄날이면 그야말로 환상적인 벚꽃 터널을 이룬다. 마치 꿈길과도 같은 이 벚꽃 길은 일명 ‘혼례길’이라고도 불린다.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 손을 잡고 이 벚꽃 길을 걸으면 반드시 결혼에 성공한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쌍계사

‘10리 벚꽃길’이 끝나는 곳에서는 쌍계사가 가깝다. 천년 고찰 쌍계사는 신라 성덕왕 때인 722년에 창건되었다. 당시의 이름은 옥천사였으나 훗날 신라 정강왕에 의해 쌍계사로 그 이름이 바뀌었다. 쌍계사 금당은 쌍계사 경내에서 가장 높고 한적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설리갈화처(雪裏葛花處, 눈 속에 칡꽃이 피는 곳)’라 여겨지는 명당터다. 현재 이 금당에는 ‘세계일화조종육엽’과 ‘육조정상탑’이라고 쓴 편액이 걸려 있다. 눈에 익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체다.
쌍계사 금당 안에는 ‘육조정상탑’이라 불리는 자그마한 칠층석탑이 있다. 이 석탑 안에 혜능선사의 정골사리가 모셔져 있다. 참배객들은 칠층석탑 뒤편의 작은 구멍을 통해서 정골사리를 직접 만져볼 수 있다. 혜능선사는 달마대사로부터 시작된 중국 선종의 6대 조사인데 남종선(南宗禪)의 시조로도 유명한 선승이다.

평사리

하동군 악양면은 섬진강을 끼고 있는 평화로운 고장이다. 바로 이 악양면 초입에 소설 ‘토지’의 배경지인 평사리가 있다. 마을 입구에 있는 주차장에서 7~8분쯤 오르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최참판댁이 나타난다. 최참판댁의 누마루에서는 넓은 평사리 들판과 섬진강 물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소설의 내용을 근거로 지어진 최참판댁에는 윤 씨 부인이 사용했던 안방을 비롯해서 별당채, 행랑채, 초당, 누마루 등이 복원되어 있다. 근처에는 드라마 ‘토지’를 촬영한 오픈 세트장이 있다.
드라마를 통해 널리 알려진 ‘토지’는 박경리 선생이 1969년부터 1995년까지 쓴 대하소설이다. 소설의 배경이 된 시기는 동학농민혁명과 갑오개혁, 명성황후시해사건 등이 지나간 1897년 한가위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다. 평사리를 비롯해서 지리산, 서울, 간도, 러시아, 일본, 부산, 진주 등에서 펼쳐지는 최씨 집안의 가족사를 그렸다.

청학동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에 있는 청학동은 오랜 세월을 두고 많은 사람이 이상향의 땅으로 암시했던 곳이다. 당연히 일반 산골 마을과는 그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 평온한 주변 지세는 물론이고 현지 주민들의 표정에서도 맑은 기운을 느낄 수 있다. 간혹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옷차림도 마치 영화나 사극 드라마에서 보던 모습과 비슷하다. 청학동은 크게 도인촌, 삼성궁, 관광지구 등으로 나누어져 있다. 마을 곳곳에는 관광객들을 위한 대형 주차장과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다. 잠시나마 청학동의 맑은 기운을 느껴보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숙박업소와 음식점도 많이 들어섰다.
청학동에는 다소 이색적인 공간인 삼성궁이 있다. 정식 명칭은 ‘지리산청학선원배달성전삼성궁’으로 하동의 특별한 관광명소로 많이 알려져 있다. 얼핏 보기에는 수많은 돌탑을 불규칙하게 쌓아놓은 것 같지만 실은 고조선의 소도를 재현해 놓은 ‘작은 마을’이다. 삼성궁의 가장 안쪽에 있는 건국전에는 환인, 환웅, 단군이 모셔져 있다.

  • 화개마을 입구에 있는 화개장터
  • 관광객들에 붓글씨를 써주는 청학동 도인
  • 평사리 최참판댁 누마루
  • 쌍계사 금당
정원이 아름다운
지베르니
<흰색 수련 연못, 1899>의 배경이 된 물의 정원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라는 영화가 있다. 2012년의 첫 개봉에 이어 2016년에 재개봉된 영화로 프랑스 파리의 주요 관광명소들이 대거 등장한다. 그 가운데 클로드 모네의 작품 속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연못도 있다. 그 연못이 바로 지베르니에 있는 ‘수련 연못’이다. 지베르니는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70km쯤 떨어져 있는 한적한 마을이다.
모네는 여행을 하다가 ‘베르농 지베르니역’ 근처에 있는 이 마을의 풍광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1883년부터 1926년까지 43년 동안 지베르니에 머물며 작품 활동에 몰두했다. 모네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수련 연작’의 대부분도 이곳에서 완성되었다.

모네의 집

세계적인 관광명소인 ‘모네의 집(Foundation Claude Monet)’ 은 크게 주거공간 및 전시공간, 꽃의 정원, 물의 정원(수련 연못), 기념품 판매장 등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은 2층 벽돌집인 ‘주거공간 및 전시공간’이다. 일반적으로 이곳을 ‘모네의 집’이라 부르기도 한다.
2층 벽돌집에는 모네가 그림을 그리던 아틀리에와 함께 침실, 일본 그림 전시장 등이 있다. 우리나라 방문객들이 이곳에서 다소 의아해 하는 공간은 2층에 있는 일본그림 전시장이다. 이 그림들의 정체는 대략 14세기부터 19세기 무렵까지 일본에서 유행하던 유키요에(목판화) 작품들이다. 모네는 이 그림들을 수집해서 직접 전시할 공간까지 지정할 정도로 유키요에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다. 유키요에는 훗날 모네를 비롯해 ‘인상파 화가’로 분류되는 많은 화가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꽃의 정원

‘꽃의 정원’은 얼핏 보면 다소 거칠어 보이는 꽃밭이다. 하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꽃의 색깔과 크기, 높이, 간격 등이 공식에 의해 잘 정돈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영국의 ‘코티지 가든’ 여러 개를 옮겨 놓은듯하다. 화가이자 훌륭한 정원사였던 모네는 이 정원을 가꾸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림을 그리지 않는 날에는 직접 전지가위를 들고 정원으로 나가서 꽃과 나무들을 보살폈다. ‘꽃의 정원’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다양한 종류의 유실수들이 양귀비, 아네모네, 수선화, 튤립, 장미, 히아신스를 비롯한 많은 꽃과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 꽃들은 봄부터 가을까지 약 열흘 간격으로 분주하게 옷을 갈아입는다. ‘꽃의 정원’ 곳곳에 있는 유실수들은 좋은 그늘막 역할도 한다. 커다란 나무 아래에는 정원을 산책하다 잠시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들이 마련되어 있다. 15명 내외의 단체 방문객들을 위한 휴식공간도 곳곳에 마련되어 있다.

물의 정원

‘물의 정원(수련 연못)’에는 모네의 그림에서 낯이 익은 풍경들이 펼쳐져 있다. 마치 밀림을 연상케 하는 울창한 숲 한가운데 연못이 조성되어 있고, 연못 주위를 따라 고즈넉한 산책로가 이어져 있다. 연못으로 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곳에는 일본식 아치형 다리가 놓여 있다. 이 일본식 정원은 유끼요에 작가인 우타가와 히로시게(1797~1858년)의 ‘명소강호백경’에 등장하는 ‘가메이도의 물 위에 핀 등나무 꽃’을 모티브로 해서 조성했다.
모네는 이 연못을 가꾸는 일에 남다른 공을 들였다. 연못에 물을 채우기 위해서 인근의 ‘엡트 강’ 물줄기를 끌어들였을 뿐만 아니라 습지에 어울리는 많은 나무와 꽃을 심었다. 그리고 시간이 나는 대로 연못가에 앉아서 빛의 움직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수련들과 주위의 사물들을 화폭에 옮겼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것이 모네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수련 연작’이다.

지베르니 인상파 미술관

‘모네의 집’ 근처에는 ‘지베르니 인상파 미술관’ 이 있다. 2009년 이전에는 ‘아메리칸 지베르니 미술관’으로 불렸던 곳이다. 미술관 주변에는 자그마한 양귀비 꽃밭도 조성되어 있다. 양귀비는 모네의 작품 속에도 자주 등장하는 꽃이다. 모네가 1873년에 그린 ‘아르장퇴유 근처의 양귀비(Poppies, Near Argenteuil)’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여인은 모네의 첫 번째 아내인 까미유(Camille Monet)다. 그 옆에 있는 어린 아이는 모네의 아들인 장(Jean)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까미유는 1878년에 둘째 아들 미셸(Michel)을 낳은 후 이듬해인 1879년에 32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어려운 시절을 함께 견딘 아내를 먼저 보내는 모네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우선 지인에게 부탁해서 전당포에 맡긴 아내의 목걸이를 되찾아왔다. 그리고 목걸이를 숨을 멈춘 아내의 목에 걸어주었다. 모네는 아내의 임종 모습도 그림에 담았다. 그림을 완성한 후에는 오른쪽 하단에 친필로 사인을 하고 그 끝에 하트를 그렸다. 아마도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하트가 아닐까 싶다. 현재 이 그림은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 모네의 정원 풍경
  • 모네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