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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SS 금융가이드
배워봅시다
  • 슬쩍 찌른 옆구리에 월 10억 절감,
    ‘넛지 효과’ 의 힘

    • 글. 김고금평 머니투데이 문화부 기자
  • 얼마 전 ‘배달의 민족’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일회용품을 빼달라는 옵션을 기본사항으로 배치해 고객의 선택을 유도한 결과 월 10억 원을 절감한 효과를 냈다. 이렇듯 ‘넛지(nudge)’를 도입해 효율적인 선택을 유도, 환경보호까지 가능하게 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는데, 소비자의 더 나은 선택을 유도하는 넛지효과의 힘이 궁금하다.
옆구리를 슬쩍 찌르다

평소 먹던 그릇에 밥 한 공기를 먹을 때와 양푼에 비빔밥을 만들어 함께 먹을 때 식사 양의 차이는 엄청나다. 후자의 식사는 결과적으로 평소 식사보다 2배쯤 많을 수도 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간단하다. 양이 많으니 많이 먹었을 뿐이다.
캠벨(Cambell) 사가 이와 비슷한 실험을 한 적이 있다. 토마토 수프가 담긴 커다란 그릇 앞에 앉아서 원하는 만큼 먹으라고 참가자들에게 요구했다. 사실 수프 그릇들은 테이블 밑에 설치된 기계와 연결돼 자동으로 리필되도록 고안됐다. 대다수 사람은 실험이 끝날 때까지 자신이 엄청난 양을 먹고 있음을 깨닫지 못한 채 계속 수프를 먹었다. 커다란 접시나 커다란 팩은 일종의 선택 설계로서, 주요한 ‘넛지(nudge)’ 역할을 한다. 넛지는 말 그대로 ‘옆구리를 슬쩍 찌른다’는 뜻이다. 옆 사람의 팔을 잡아끌어서 행동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팔꿈치를 살짝 툭 치면서 어떤 행동을 유도한다는 의미이다. 효과적인 측면에서 ‘강요’보다 최소한 몇 배 더 강력하다.
수프를 작은 그릇에 한 번만 줬다면 그 정도의 양만 먹었을지도 모른다. 옆구리를 찌를 정도의 부드러운 개입이 없었기에 넋 놓고 수프를 무한정 ‘흡입’한 셈이다.
시카고대학교 리처드 탈러 교수가 ‘넛지 이론’을 처음 소개한 이후 전 세계에서 정부 정책의 효과를 높이고 경제를 활성화하는 ‘재료’로 애용돼왔다.
공공적 성격의 ‘넛지 프로젝트’는 런던에서 가장 먼저 시작됐다. 런던 길거리 폭동이 끊이지 않자 해결책을 고민하던 정부는 공권력으로 제압하기보다 인간의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방안으로 변화를 모색했다. 거리에 더 많은 경찰을 배치하는 대신, 아기들의 귀여운 얼굴을 보여주는 식이다. 페이스북을 통해 지역에 사는 아기 얼굴을 모으고 가게 셔터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이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기 얼굴 그리기 캠페인이 탄생했고 놀랍게도 이는 반사회적 범죄를 65%가량 줄이는 효과를 가져왔다. 캠페인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칸 국제광고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으며 그 성과까지 입증했다.

넛지효과

‘넛지’를 활용한 정책의 또 다른 대표 사례로 교통사고 예방을 빼놓을 수 없다. 세계에서 가장 경치 좋은 도심 도로 가운데 하나는 시카고의 레이크쇼어 도로다. 미시건 호수를 끼고 펼쳐진 이 도로를 달리면 시카고의 장엄한 스카이라인을 만끽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도로에는 S자 커브가 연달아 이어져 매우 위험한 구간이 있다. 시속 40km 표시를 보지 못해서 사고를 당하는 운전자들도 여럿이다. 시 당국은 새로운 방법을 도입했는데, 커브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하얀 선들을 그려 넣었다. 앞쪽의 선들은 간격이 고르지만, 가장 위험한 커브 구간부터는 간격이 더 좁아져서 속도가 증가하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덕분에 운전자들이 커브의 정점에 도달하기 전,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됐다. 그렇게 우리는 넛지를 당하고 있는 셈이다.
넛지가 처음부터 정부의 정책 같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계획되고 시작된 건 아니다. 시초는 네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스키폴 공항의 남자 소변기 중앙에 붙여진 파리 모양 스티커였다. 이 스티커 때문에 변기 밖으로 튀는 소변의 양이 80%나 줄었다고 한다. 넛지는 이렇게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일상의 ‘작은 혁신’들이다. 작은 아이디어, 간단한 역발상, 단순한 움직임으로 변화를 이룬다.
멕시코는 전체 인구의 70%가 비만일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 비만의 가장 큰 원인이 잘못된 식습관에 있는데, 그중 하나가 채식을 멀리하는 것이다. 특히 멕시코 남자들은 과일이나 채소를 먹는 것을 허약함의 표시로 여겨 더 기피했다. 과일·채소를 남자다움과 연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은 간단했다. 멕시코에서 가장 유명한 WWE 레슬러 선수의 팔을 본뜬 팔씨름용 주스기를 만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남자와 겨뤄야만 생과일주스를 먹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좋은 넛지와 나쁜 넛지

인간의 행동을 유도하는 방법으로는 크게 인센티브와 금지(벌칙)가 있다. 앞서 소개한 예처럼, 소변기에 붙인 파리 모양 스티커라는 묘수를 떠올리기 전, 일반적으로 토의된 내용들은 “지저분하게 (화장실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제한한다.”(금지) 아니면, “깨끗하게 이용하는 사람에게 할인쿠폰을 제공한다.”(인센티브)였을 것이다.
하지만 선택 설계자(사람들이 결정을 내리는 데 배경이 되는 정황이나 맥락을 만드는 사람)가 화장실에 파리 스티커를 붙이기로 결정한 ‘넛지’는 사람들에게 어떤 선택을 ‘금지’하거나 그들의 경제적 ‘인센티브’를 훼손하지 않고도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그들의 행동을 변화시켰다는 점에서 가장 합리적 해결책으로 떠올랐다.
넛지 형태의 개입은 쉽게 피할 수 있는 동시에 그렇게 하는 데 비용도 적게 들어야 한다. 학교 급식을 하며 좋은 과일을 눈에 잘 띄는 위치에 놓는 것은 넛지지만, 정크푸드를 금지하는 것은 넛지가 아니다. 넛지는 사람들의 선택에 부드럽게 간섭하지만, 여전히 개인에게 선택의 자유가 열려 있는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 주의가 과도할 경우 심각한 위험이 뒤따를 수도 있다. 2000년대 터진 금융위기가 대표적 사례다. 정보를 독점한 소수의 이기심 때문에 자유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주택담보대출 업계의 관행은 ‘나쁜 넛지’가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만연할 수 있다는 걸 극명하게 보여줌으로써 모두가 한배 를 탄 공범이 됐다. 지금도 나쁜 넛지의 유혹은 차고 넘친다. ‘한 달 시범 구독’ 같은 의심스러운 제안, ‘항공사 보험 구매 여부’ 같은 의뭉스러운 강제 조항들이 그것. 소비자가 더 신중하게 살피고 거절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좋은 넛지’에 대한 판단이 정확할수 록 시장은 번창하고, 우리의 선택지도 나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