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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REVIEW
  • 저성장의 파고, 그리고 미래

    어떻게 넘어야 하는가?

    • 글.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
  • 저성장의 늪에 빠진 일본 경제를 ‘잃어버린 20년’이라고 한다. 길고도 혹독한 침체를 의미하는 이 말에서 한국은 자유로울 수 있을까? 세계 최저 출산율, 정부부채 폭증과 재정 건전성 악화로 인한 국가신용등급 강등 가능성, 급증하는 좀비기업으로 인한 경제성장률ㆍ경제역동성 저하, 취업 기회를 잃어버린 ‘코로나19 세대’가 부른 가계 빈곤화 등이 우리 경제의 앞날을 어둡게 하고 있다. 하지만 긍정적인 시그널은 없을까. 지금의 흐름은 어떠한지, 대비할 전략은 무엇이 있는지 깊이 살펴봤다.
코로나19로 현실화되었던 저성장의 시그널

현재 국내외 경제는 ‘저체온증’에 빠진 상태다. 경제가 성장하지 못하고 정체되니 물건을 사려는 수요가 적어 물가는 오르지 않고 투자하려는 수요도 적어 금리도 낮은 수준에 머물게 된다. 우리는 바로 옆 일본을 통해 경제가 저체온증에 빠지게 되면 얼마나 고통스러운 상황을 맞게 되는가를 지켜봤다. 이런 상황에서 출산율마저 0명대로 떨어진다면 인구절벽이 현실화되고 미래를 담보하기 더욱 어려워진다. 필자는 이런 경제 현상을 '제로 이코노미'라고 정의한 바 있다. 실제로 이 흐름은 코로나19를 겪으며 우리 경제에도 찾아왔다. 2020년 한국 경제는 -1% 역성장했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019년에 이미 0.4%로 낮아졌고 2020년에도 0.5%에 머물렀다. 팬데믹을 겪으며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0.5%까지 낮췄고 은행 정기예금 금리 등 많은 시중금리들이 0%대로 떨어졌다. 계속 낮아지던 합계출산율은 0.8명대로 낮아졌다. 남자와 여자, 부부 한 쌍이 낳는 아이가 평생 0.8명에 불과하다는 의미로서, 한 세대가 지날 때마다 인구는 반 이상 줄어들 전망이다.
우리 경제에 저성장의 흐름이 계속된다면 경제적 어려움은 일본보다 더욱 클 가능성이 높다. 일본은 과거 긴 경제호황 기간 동안 벌어들인 막대한 부를 신흥국을 중심으로 대거 해외에 투자해 놓아서 설령 무역수지가 적자가 되더라도 해외 이자 소득, 배당 수입 등을 통해 경상수지는 흑자를 유지한다. 단카이 세대를 중심으로 한 노년층은 이러한 소득에 기반한 탄탄한 연금소득으로 생활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아직 해외에 이러한 부를 축적하지 못해서 여전히 무역수지 흑자 유지가 중요하고, 공적연금을 받아 생활하는 노년층의 비중은 일본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우리 원화는 일본 엔화와 같은 국제통화 지위를 확보하지 못해 우리 경제가 어려워지거나 국제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면 원화 가치는 급락하고 우리 금융시장에서 돈이 빠져나가지만 동일한 상황에서 엔화 가치는 상승하고 일본 금융시장으로 돈이 유입된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고령화 및 인구 감소 속도는 일본을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우리 경제는 ‘저체온증’에서 벗어났나

2021년을 지나면서 한국 경제는 저성장 경제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수출이 호조세를 나타내고 소비가 회복되면서 2021년 경제성장률은 4%에 달했다. 석유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다시 오르고 음식료품 등 먹거리 가격이 오르면서 소비자물가상승률은 3%를 넘어섰다. 한국은행은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고 정책금리는 1%대에 진입했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 경제는 저성장 기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결론부터 이야기한다면 한국 경제의 여러 수치가 저성장에 가까워지는 흐름은 조만간 다시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일부 측면에서는 코로나19가 이 흐름을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을 수도 있다.
우선 올해 우리 경제는 수출 증가세는 둔화되지만 소비는 충분히 회복되지 않으면서 경제성장률이 2%대로 낮아질 전망이다. 글로벌 공급 병목으로 인한 생산 차질이 당초 예상보다 길어지는 가운데 글로벌 인플레로 소비가 위축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명목임금* 상승이 기업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명목임금보다 물가가 더 빠르게 오르면서 가계의 실질소득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는 올해 하반기부터 급랭할 가능성이 크고 중국 경제는 경제성장률이 5% 아래로 떨어질 전망이다.
수요 회복보다는 공급 부족 및 비용 상승 요인이 강한 인플레 압력에 직면하여 미국 등 주요국들은 금리 인상 등 통화 긴축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인플레 억제 효과는 제한적인 가운데 도리어 소비 및 경기에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향후 경기가 악화되면 비용 요인만으로 높은 인플레가 계속 지속되기 어려워 당장은 속도를 내는 금리 인상 사이클도 과거에 비해 조기에 종료될 가능성이 크다. 즉 장기적으로 보면 국내외 경기 둔화로 인한 수요 부진으로 물가상승률과 금리도 다시 낮아질 전망이다.

잠깐 용어
*한계비용 제로
임금을 화폐단위의 금액으로 표시한 것
**디레버리징(Deleveraging)
자기자본 대비 차입비율에서 차입비율을 낮추는 것
***보복소비
외부요인(코로나19)에 의해 억제되어 있던 소비심리가 확진자 감소 같은 외부 요인의 해소로 회복되면서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현상, 미뤄뒀던 소비를 의미하는 이연소비로도 쓰임
코로나19가 우리 경제에 남길 상흔

위드코로나로 전환되면서 코로나19 경제 충격은 점차 완화되겠지만 우리 경제에 남길 상흔에 주목해야 한다. 그 경제적 영향들은 사라지지 않고 중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의 성장세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소득과 매출이 급감한 많은 가계, 자영업자, 기업들을 돕기 위해 엄청난 돈을 풀었지만, 이러한 돈들은 대부분 빚의 형태로 풀렸다. 향후 대규모 부채 탕감이 없다면 이러한 빚은 결국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갚아야 한다. 아직은 경제 충격에 대한 우려 때문에 부채 이자 납부 유예, 만기 연장 조치 등을 통해 그 부담을 정책 당국이 미루어 주고 있지만 이제 빚을 갚아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빚을 갚기 위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가계는 소비를, 기업은 투자와 고용을 줄이면서 부채 디레버리징(Deleveraging)**으로 인해 경제가 부진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우리 경제가 직면한 부채위기는 과거와 같은 ‘펑 하고 터지는 식’의 부채위기가 아닐 것으로 보인다. 결국 경기는 제대로 살아나지 않고 자영업자들과 기업의 매출은 늘지 않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부실기업 문제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코로나19 경제 충격에도 불구하고 기업 대출 연체율과 부도율이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정책 당국의 금융 지원 때문이다. 문제는 엔데믹으로 이행될수록 계속 이런 식으로 어려워진 기업들을 돕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한 의구심과 우려가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코로나19 펜트업 수요 급증 과정에서 업황이 좋았던 수출, 제조, 대기업들이 호실적을 기록함에 따라 우리나라 기업들의 상황이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훨씬 많은 수의 기업들의 상황이 더욱 어려워졌다. 이는 일부 반도체기업들의 상황이 좋아짐에 따라 우리나라 기업 통계상의 전체 매출, 이익, 시가총액 증가율이 높게 나타났던 ‘반도체 착시 현상’과도 유사하다. 그런 면에서 코로나19가 진정되고 기업 금융 지원이 약화될 때가 부실기업 및 취약기업들에게는 더욱 위험한 때가 될 수 있다. 장기적으로 가장 우려되는 부문은 청년층이다. 20대 중후반의 청년 세대는 코로나19 고용 충격 속에서 중장년 계층에 비해 일자리를 더욱 많이 잃고 실업이 장기화되고 있다. 문제는 청년 세대의 경제적 어려움이 심화되고 경제적 안정을 찾는 시기가 늦어질수록 이들이 결혼, 출산 등을 미루면서 출산율이 더욱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구가 줄어도 AI, 로봇 등이 생산을 대신해 줄 것이므로 걱정할 필요 없다는 주장도 있지만, 문제는 이렇게 만든 물건을 사줄 사람이 줄면 결국 수요 부진으로 경제는 침체에 빠질 수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저성장 장기화에 대응 전략

IMF 등 많은 국내외 경제 전망 기관들과 국제기구들은 향후 우리 경제의 성장률이 점차 낮아져 0%대에 수렴해 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재는 인플레가 걱정거리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등 공급 측면의 가격 상승 요인들과 애로 요인들이 진정되면 물가상승률도 중장기적으로는 다시 하락세로 돌아설 전망이다. 경제성장률이 낮아지는 상황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일시적인 보복소비***가 지나가고 나면 수요가 계속 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지금은 금리 인상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향후 한국은행이 금리를 많이, 지속적으로 올리기도 어려울 전망이다. 코로나19 이전 나타났던 우리 경제의 저성장 움직임이 재개되지 않도록, 코로나19가 남길 경제적 상흔이 경기 침체를 가속화시키지 않도록,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요구된다.
이런 와중에 폭증한 부채 문제는 경기 활성화와 경제 주체들의 부채 상환 능력 제고를 통해 점진적으로 해소해 나가야 한다. 일회성 대규모 부채 탕감은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고, 즉각적인 효과를 내기에 좋은 직접적인 대출 억제는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 부실기업 처리 문제는 경제의 역동성 유지, 자원배분의 효율성 제고라는 명확한 기준 하에 결정되어야 한다. 취업, 결혼, 출산을 앞둔 청년층의 어려움은 부모, 형제 세대를 포함한 가족 전체 및 국가 전체의 장기적 문제로 인식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글로벌 통화긴축 움직임 속에서 단기적으로 경기 대응에 있어서는 당분간 재정정책이 핵심이 될 수밖에 없다. 재정 지출의 효율성을 높이면서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 확충을 중시해야 한다. 재정 건전성을 중시하는 국제 금융시장 트렌드를 고려하면서 중장기적으로는 한반도 통일에 따른 대규모 재정 수요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특히, 재정 지출에 있어 ‘다음 세대에 과도한 빚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다. 재정 확대의 부작용을 방지하고 통화 완화의 유효성을 높이기 위해서 통화정책은 재정정책과 보다 긴밀하게 결합되어야 한다. 코로나19로 국가의 개념이 중요해지면서, 경제뿐만 아니라 그 외 분야에서도 정부와 정책당국의 역할과 중요성이 더욱 커졌음을 상기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