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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SS 금융가이드
전문가 리포트
  • 금소법의 존재 이유와
    소비자보호의 당위성

    • 글.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학과 교수
  • 금융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금소법)이 발의된 지 9년만에 국회를 통과했다. 시행까지는 아직 1년이라는 시간이 남았지만, 금융시장 활성화와 투자자보호라는 명분이 팽팽하게 맞서다 드디어 국회 문턱을 넘었다는 것만으로 큰 의미가 있다.
정당한 금융거래를 위한 당연한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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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은 희소한 재무적 자원의 시간에 걸친 배분을 가능하도록 해주기 때문에 오늘과 내일을 살아갈 모든 사람에게 꼭 필요하고 또한 유익을 준다. 어떤 물건을 만드는 기술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여전히 예전 방식대로 손수 오랜 시간이 걸려 그 물건을 하루에 고작 몇 개 만들어 생계를 유지해 나가는 반면 다른 한 사람은 돈을 빌려 대량 생산 설비를 갖추고 시장을 늘리면서 거부가 될 수 있었다는 일화는 금융의 중요성을 얘기할 때 자주 인용되곤 한다. 그런데 오늘 당장 금융에 관한 의사결정을 하더라도 그 결과는 시간에 걸쳐 나중에 나타나므로 금융에는 필연적으로 위험이 따를 수밖에 없다. 불확실한 미래와 연관되어 있으니 금융이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것이다.
한편 금융시장에서 원활한 금융거래가 가능하도록 하는 금융기관의 역할과 순기능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금융기관의 기능을 통해 창출되는 경제적 가치는 실로 막대하다. 금융기관의 이익이 쌓이고 부가 늘어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우리가 늘 주목해야 할 것은 금융상품을 매개로 금융소비자의 거래상대방이 되는 금융기관이 정당한 거래에 참여하느냐이다. 금융상품을 만든 금융기관이야말로 그 누구보다도 해당 금융상품에 대해서 가장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판매를 대행해준다고 하더라도 그 금융상품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시간에 걸쳐 결과가 나타나는 위험성이 있는데 이것 말고도 금융소비자의 수요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다양한 세부 특성을 금융소비자에게 충분히 설명해 주어야 하는 것은 정당한 거래에 있어서 너무나 당연한 의무이다. 하지만 이런 기본적인 의무조차도 법규에 명시적으로 반영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금융상품의 위험성과 소비자 선택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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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과거에 금융감독원에 근무하면서 많은 일을 경험했지만 2013년 동양그룹 회사채와 CP의 불완전판매에 따른 금융소비자 피해 구제 업무와 일화들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다. 당시 동양그룹 계열사들의 부도뿐만 아니라 다수의 금융소비자 피해가 야기되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도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 예컨대 여유자금이 아니라 결혼이나 내 집 마련 등으로 가까운 시기에 꼭 써야 할 자금을 투자했다가 회수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사연들도 전해졌다. 회사채나 CP와 같은 금융투자상품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에서 투자성, 즉 투자손실의 위험이 있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는 만큼 의사결정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하고 또한 그에 따른 책임도 본인이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다. 금융소비자가 잘 알고 선택(informed choice)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불충분하거나 왜곡된 정보, 또는 부당한 권유 등에 의한 선택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당시의 동양그룹 사태와 최근의 DLF 사태에서도 그런 사례들을 발견할 수 있다.

신의성실의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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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런 일들이 왜 되풀이되는 것일까? 국내 펀드투자자들의 투자 행동을 연구한 논문에 따르면 투자자들의 약 30%는 펀드 판매 금융기관(은행과 증권회사)의 직원으로부터 해당 정보를 획득하며 대체로 주거래 금융기관이거나 신뢰하기 때문에 거래한다는 응답 비율이 높았다. 신의성실은 금융소비자를 상대하는 금융기관 임직원에게 더욱 강조되어야 할 원칙이다. 금융기관의 영업행위에 관한 준칙들도 이를 바탕으로 확장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도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직원이 금융소비자의 필요보다 자신의 실적이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예컨대 권역별로 다양한 특성을 반영하여 설계된 연금 상품의 경우 금융소비자의 가입 목적이나 개별적인 상황을 고려하기보다는 단지 판매 실적에 유리하거나 보수가 높은 것을 추천하는 사례들을 지적하는 신문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이처럼 일반 원칙에 따른 금융기관의 올바른 영업 관행이 확립되기 어렵다면 보다 엄격한 규율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자체가 최우선의 목적은 아니지만, 사후적으로 강력한 제재가 따른다면 사전적으로도 위법 부당한 행위를 억제하는 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금융소비자보호를 위해 아직 미흡한 점들을 다시 검토하면서
우리 사회의 제도가 완결성을 향해 더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금융소비자보호의 당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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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경제학자와 법학자가 금융소비자보호의 당위성에 대해 토론을 벌인 적이 있다. 경제학자는 금융상품에 내포된 위험성과 종종 복잡한 구조에 비추어 정보의 비대칭성과 교섭력의 우열 또는 불균형이 크므로 일반 재화나 서비스 거래보다 더 강도 높은 규제와 금융소비자보호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법학자는 어떤 거래가 강제된 것도 아니고 금융소비자 개인이 최종적인 판단을 해서 결정을 했다면 거기에도 책임이 있으므로 과도한 보호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였다. 경제학자가 체계적인 법학 지식까지 갖추기는 어렵지만 법은 정의를 추구하고 그것을 지키려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정의는 무엇일까? J. Rawls의 「정의론」에서는 정의 또는 부정의를 논할 수 있는 것은 자연적으로 주어진 사실들이 아니라 그 사회의 제도가 그러한 사실들을 어떻게 다루어 가느냐에 대해서라고 기술하고 있다. 예컨대 누군가가 남들에 비해 어떤 능력의 부족을 가지고 태어난다면 거기에 대해서는 정의를 말할 수 없더라도 그 사회가 이 일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대해서는 각자가 정의의 관점에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므로 금융소비자보호에 대해서도 결국 그 사회의 제도가 어떠냐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거기에는 그러한 제도를 만들어낸 그 사회의 정의관이 담겨 있을 것이다.

금소법의 존재 이유와 금감원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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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금소법)이 국회를 통과하여 입법에 이르게 되기까지 9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번번이 무산될 때마다 안타까웠기에 드디어 그 법률 제정을 다행이라 여기면서도 또한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생각하게 된다. 금융소비자보호를 위해 아직 미흡한 점들을 다시 검토하면서 우리 사회의 제도가 완결성을 향해 더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금융소비자보호가 강조되기 시작한 이래 금융감독원도 그동안 많은 제도 개선의 노력을 기울여 왔으며 이러한 추세가 앞으로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